2008년 12월 01일
희로뽕 판매자.
박정희가 권력을 잡은 이후부터, 단 하나의 담론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었다.: 우리는 잘살아야 하고, 잘살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붙는다. 물질적으로 잘산다는 것을, 그는, 그냥 잘산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조금 부유해 졌다고, 과연 잘사는 것일까? 그는 물질을 올리고 정신·신앙·문화를 낮춘다. 정신적인 가치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된다. 언제까지?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 쾌락만 남을 때까지? 그는 상징적인 히로뽕 판매자였다.- 김현, 행복한 책읽기 중-
김현이 1988년 적은 이 글은 요즘 세태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사실 우리는 박정희가 뿌린 '부'라는 이름의 희로뽕 중독자였다.
희로뽕이 절대로 장시간의 만족을 주지 못하듯, 부의 충족 역시 만족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진짜 희로뽕 중독자가 그렇듯, 오직 희로뽕이 주는 쾌감을얻기 위해 다른 모든 무수한 가치들을 버리며 살아왔다.
지금 우리도 희로뽕 판매자를 대통령으로 가지고 있다. 잘산다는 것에관한 담론이 옳든 그르든, 안타깝게도 이분의 약발은 너무 약하다. 당연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중독자들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희로뽕 중독자는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에는 인지능력과 사고능력이 저하되어있다.
# by | 2008/12/01 00:14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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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국가에서 물질의 부는 '잘 삶'의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필요조건인 건 확실합니다. 그리고 (유신 전) 박정희의 경제담론은 필요조건 충족을 목적했다고 봅니다. 말 그대로 '필요하니까', '그것조차 없으니까'요. 필요요건 충족 후 충분조건 달성은 이후 세대, 후임자의 몫이겠죠. 따라서 배금주의 배격의 주체는 국민이어야 하고 실패의 귀책도 결국 국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배금주의의 귀책이 박정희를 향한다고 오해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 첨언합니다. 결국 우리의 책임이죠. 저자도 그런 취지인 것 같습니다.
'필요요건 충족'이 지나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기도 했지요.
지금 대다수가 잘살게 되었다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준사람들과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암튼 자주 놀러오세요. 저두 놀러가겠씁니다.^^